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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장군의 시 원문 및 해설

각희골 2025. 10. 3.

조선시대 뛰어난 무관인 남이 장군이 지은 시를 '백두산석마도진'이라고 하는데요, 남이 장군의 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남이 장군의 시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남이 장군의 시 원문 및 해설

<남이 장군의 시 원문 및 해설>

남이 장군의 시 '백두산석마도진'은 남이 장군의 웅대한 기상과 애국충정이 담긴 역작입니다. 원문과 해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원문

白頭山石 磨刀盡 (백두산석 마도진)이요 / 豆滿江水 飮馬無 (두만강수 음마무)라 / 男兒二十 未平國 (남아이십 미평국)이면 / 後世誰稱 大丈夫 (후세수칭 대장부)리오.

 

② 해설

백두산에 있는 돌은 칼을 갈아 모두 없애고 /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라 / 남자로 태어나 20세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 후세에 누가 나를 대장부라 하겠는가.

<남이 장군은 누구인가>

남이 장군(1441~1468)은 놀라운 군사적 재능을 바탕으로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병조판서까지 오른 천재 무관이었습니다. 특히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면서 보여준 그의 용맹함은 세조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습니다.

 

 

세조는 남이 장군을 '하늘이 우리나라를 위해 내려준 인재'라고 칭할 정도로 그를 총애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시기하던 병조참지 유자광으로부터 모함을 받고 역모로 몰려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시 창작 역사적 배경과 동기>

15세기 중반 조선은 북방 오랑캐의 지속적인 침입으로 국경 지역이 불안정했습니다. 남이 장군이 북방에서 군사 활동을 하며 이시애를 만났을 때, "북방은 북방의 사정을 잘 아는 북방인이 다스려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전해집니다.

 

 

백두산에서 광활한 만주벌판과 한반도를 바라보며 남이 장군은 천하평국(天下平國)의 웅대한 꿈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개인적 경험이 '백두산석마도진'이라는 명시를 탄생시켰습니다. 그의 시는 단순한 문학 작품을 넘어 조선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긴 결과물이었습니다.

<시가 불러온 비극적 운명>

남이 장군의 시는 그에게 비극적 운명을 가져왔습니다. 병조참지 유자광은 남이 장군을 시기하여 그의 시를 악의적으로 해석했습니다. 특히 "혜성이 나타남은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을 나타내려는 징조"라는 남이 장군의 발언을 왕권 찬탈의 의도로 왜곡했습니다.

 

 

결국 남이 장군은 역모 혐의로 몰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죄는 지은 것이지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1468년 11월 11일, 28세의 젊은 나이로 참혹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의 죽음은 정치적 모함과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 된 비극적 사례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남이 장군 기념사업>

남이 장군의 유산은 다양한 문화유산과 기념사업을 통해 보존되고 있습니다. 강원도의 남이섬에는 남이 장군의 원혼이 떠돈다는 설화가 전해지며, 이는 지역의 중요한 문화 자원이 되었습니다.

 

 

또한 남이장군묘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남이 장군 시의 교훈>

남이 장군의 시는 개인의 야망과 국가적 이상이 조화된 시대정신의 구현체로서, 현대 청년들에게도 도전정신과 애국심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특히 젊은 나이에 큰 뜻을 품고 행동으로 옮기는 적극적인 자세는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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