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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3대 대첩 이순신 한산도 대첩 진주대첩 김시민 권율 행주대첩 상식

각희골 2024. 3. 27.

임진왜란 3대 대첩은 어떤 전투를 말할까요? 이순신 한산도 대첩, 김시민 진주 대첩, 권율 행주대첩이 임진왜란 3대 대첩입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앞세워 왜선을 공격했으며, 진주에서는 김시민이 결사항전으로 진주성을 지켰으며, 행주산성에서는 권율이 왜군을 격파하였는데요, 아래와 같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임진왜란 3대 대첩>

1. 이순신 한산도 대첩

1592년 7월, 한산도 앞바다에서 펼쳐진 조선 수군 48척과 일본 수군 115척의 대결은 조선의 대승으로 끝납니다. 이순신 장군은 견내량에 모인 왜군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여 학익진으로 왜선 100여척을 격침시키고 1만여명의 적군을 전사시켰습니다.

 

반면에 조선군은 단 한척의 배도 잃지 않고 19명의 전사자와 115명의 부상자만 냈을 뿐입니다. 

 

 

이로써 조선 수군은 남해안의 해상권을 모두 차지하였고,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단했습니다. 한산도 대첩으로 이순신은 수군 통제사로 임명되었으나 원균의 모함으로 사형당할 뻔했습니다. 이후 정유재란이 일어나고 다시 수군 통제사가 된 이순신은 남은 전함 12척으로 왜선 133척과 싸워 31척을 쳐부수었습니다.

 

 

2. 김시민 진주 대첩

임진왜란 이후 전국 각지에서 의병들이 일어나자 일본군의 기세는 크게 꺽였고, 이에 일본군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가는 관문인 진주성을 함락하려 하였습니다. 마침내 1592년 음력 10월 4일, 일본군은 2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진주성을 포위하였습니다.

 

당시 성에는 진주 목사 김시민을 비롯한 3,800여명의 군사들과 백성들이 결사항전을 다짐하며 성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녀자들과 아이들에게까지 군복을 입혀 군사가 많이 보이게 하였습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일본군은 마침내 주변 민가를 모조리 불태우고 총탄을 퍼부으며 진주성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성안의 군사들은 현자총통을 비롯한 총포와 화살로 일본군을 공격하였으며, 백성들은 돌을 던지고 성을 오르는 적들에게 펄펄 끓는 물을 쏟아부으며 대항했습니다. 

 

 

또한 성밖에선 곽재우와 임계영, 최경희가 이끄는 의병 2,000여명이 달려와 진주성 전투를 도왔습니다. 치열한 전투 끝에 일본군은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10월 10일 물러나지만, 진주 목사 김시민은 전투 중에 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를 대신해 3,800명의 군사들이 2만명의 일본군과 싸워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3. 권율 행주대첩

권율은 이순신과 더불어 임진왜란의 2대 장군으로 불릴 만큼 육지에서 크게 활약했습니다. 글읽기를 좋아했으나 벼슬에 관심이 없어 늦게 과거를 보아 46세때 벼슬에 나갔습니다. 일본군이 1593년 2월 한양을 거쳐 행주산성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에 권율이 이끄는 2,800여명의 조선군과 백성들은 무려 3만명이나 되는 적을 맞아 화살과 돌, 끓는 물 등을 퍼부우면서 격렬하게 저항했고, 이 전쟁으로 일본군은 1만 명 이상 사상자를 내고 패했으며, 권율은 행주대첩의 공으로 도원수가 되었습니다.

 

이상으로 설명을 마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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